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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4-08-03 10:31
[추억의 LP 여행] 정미조(上)
 글쓴이 : 허브
조회 : 2,195  


 [주간한국 2004.06.16]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중견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정미조.
그녀는 '' 개여울'', '' 휘파람을부세요'', ''불꽃'' 등 가창력이 돋보였던 히트곡으로
1970년대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인기 가수였다.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170cm의 큰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
그리고 서글서글한 미소가 매력적인 '' 비디오형 가수''로평가 받았다.
TV의 가수 선발 노래 경연 대회 프로그램을 통해 더욱 유명해진 그녀는
각 방송국에 다양한 신인 가수 선발 대회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불러왔다.

정미조는 경기도 김포에서 극장과 양조장을 운영했던 정민해씨의 3남 3녀중
막내로 1949년 9월 14일에 태어났다.
부친은 사교춤 선생을 집으로 불러 어머니와 함께 배웠을 정도로 풍류를 즐기셨던 분이셨고
모친은 학창시절에 매스 게임 지휘자를 했던 적극적인 여성이었다.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막내 정미조는 부모님으로부터 예능쪽에 특출한 재질을 이어 받았다.

헌데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주와 끼 때문에 진로를 결정할 때마다 행복한선택의 고민을 했다.
그녀는 무용, 그림, 노래에 특히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어린 시절부터 타고 난 '' 끼''가 넘쳤던 그녀는 초등학교 때는 무용에관심이 많아 화려한 발레리나를 꿈꿨다.

중학교 때 무용과 더불어 그림 쪽에도 두각을 나타냈다.
이 당시 무용과 사생 대회에서 참가하면 입상을 독차지했을 정도였다.
원래 그녀는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지녔다.
배화여고에 진학해서는 교내 음악 콩쿠르에서 입상 할 정도로 음악 쪽에도 두각을나타냈다.
이때부터 막연하게 노래를 부르고 싶은 마음을 품기 시작했다.

1968년 화가의 꿈을 안고 이화여대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장기 자랑 시간은 그녀에겐 중요한 행사다.
행사를 앞두고 특기가 뭐냐고 묻는 선배들의 질문에 선뜻 ''노래''라고 대답한 것이 가수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
무대에서 시원한 창법으로 팝송을 노래한 미대 신입생 정미조는 장기자랑대회를 휩쓸 만큼 대단한 가창력을 뽐냈다.

곧 교내의 모든 행사에 참여해 노래를 부를 만큼 학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
래서 이화여대생 20명으로 조직된 파월 장병 위문 공연단에 선발되어 베트남에도 다녀왔다.
이후 ‘ 노래 잘 하는 이대생 정미조를 모르면 간첩’이란 말이 돌 정도로
소문이 나면서 축제 무대에 출연요청이 밀려 들었다.
당시 그녀의 레퍼토리는 프랑크 시나트라의 '' 마이 웨이''와 카펜터즈의 '' 슈퍼 스타'' 등 대부분 외국의 팝송이었다.

그녀는 전설적인 여대생 포크 가수 방의경과 더불어 이화여대 미대의 노래잘하는 '' 쌍두 마차''로 떠올랐다.
대학가의 인기 가수로 소문이 나면서 음반사에서 관심을 보여왔다.
졸업 전부터 음반제작 제의가 밀려 들어왔다.

엄격한 학칙으로 유명한 이대에서는 이 문제로 교수회의까지 열렸다.
망설였지만 그녀의 미적 재능을 아끼는 지도 교수까지 “그림은 다음에 그리고한 번 해 보라”며 부추키자
프로무대에 서고 싶었던 그녀는 미대 은사들에게 “ 곧 돌아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1972년 졸업과 동시에 데뷔를결정했다.

하지만 풍류를 알았지만 완고했던 부친은 가수활동을 반대했다.
그때 정미조는 “ 절대로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만일에
신문지상에 스캔들이 한 건이라도 실리면 그 날로 가수를 그만두겠다”고 부친에게 서약을하고 간신히 허락을 받아냈다.

1972년 3월, 결국 졸업과 동시에 아세아레코드회사와 계약을 맺고 직업 가수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후라이보이 곽규석씨가 진행하던 TBC ‘쇼쇼쇼’가는 첫 무대였다.
패티김을 연상시킬 만큼 시원한 외모와 노래솜씨를 뽐내는 정미조의 등장은 신선했다.

이후 그녀는 피아트 승용차를 상품으로 건 KBS TV의 신인 가요제 우승, 동아방송의 노래 경연 프로 10주 연속 우승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짧은 시간에 대중에게 폭 넓게 알려졌다.

1972년 7월, 몇 개월 동안의 녹음 작업이 끝나고
데뷔음반 <그리운 생각/불타는 사랑-아세아.AL-7082>이 세상에 나왔다.
1면에는 타이틀 곡 그리운생각과 ''개 여울'' 등 5곡을 수록하고 뒷면에는 팝송 번안 곡 5곡을 수록했다.

이중 '' 개 여울''과 '' 그리운 생각''이 동반 빅 히트를 터트렸다.
특히김소월 시 이희목 작곡의 '' 개 여울''은 그녀의 대표 곡이 되었을 만큼 큰반응을 몰고 왔다.
단숨에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 오른 정미조는 가창력있는 대형 가수로 인정 받으며 정상의 가수로 발돋음 했다.
인기가 높아지자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한국일보사에서 발행하던 '' 주간 여성’에 ''가수 정미조와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깊은 관계’라는 기사가 실린 것.
스캔들을 내지 않겠다고 집에다약속 하고 가수활동을 시작했던지라 정미조씨 집안에서는 스캔들 기사 때문에 난리가 났다.

“ 다른 남자와 스캔들 기사가 났다면 사실이 아니더라도 참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앙드레 김하고 스캔들이라니 이건 말도 안돼요.
지금도 분해 죽겠어요.

" 이후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그녀는 TV 출연만한달 28회를 했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녀는 무려 13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발표했다.
'' 휘파람을 부세요'', '' 불꽃'' 등 히트곡이 이어지면서
김추자, 이수미와 더불어 여성 트로이카로 불릴 만큼 정상의 가수로우뚝 섰다.


  - 최규성 가요 칼럼니스트 kschoi@hk.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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