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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10-23 18:29
불세출의 팔불출-마지막 이야기: 선물- 반짝공 혹은 찬구?
 글쓴이 : 달노래
조회 : 1,485  

어차피 팔불출임을 고백한 마당에
마지막으로 팔불출 얘기 하나 더 하지요.
이건 음악하고도 관계 없는 거지만…

불세출의 영웅은 못될지언정
불세출의 팔불출임을 자처하기에
남들 보기엔 아들 녀석과 깨나 끈끈한 정으로 뭉쳐 있고,
자식사랑에 걸맞게 아비사랑도 듬뿍 받으리라 생각되지만,
영 아니올씨다!
제 아들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불공평하게도,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제 아들 녀석은 저를 동네 구멍가게에 먼지 쌓인 꿈틀이,
포장지를 뜯어 내고 거기서 꺼낸 단 한 조각의 꿈틀이 보다도
못하게 여깁니다.

그건 전적으로 아내가 일을 하기 때문, 이라고 저는 늘 강변합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광고대행사에서 일 하는 아내 덕분에,
아들 녀석은 일년 내내 하루 종일 엄마의 사랑을 그리워합니다.
저녁 귀가 시간이면 아들 녀석은 어미 품에 폭 싸여 헤어 나질 못합니다.
저야 안중에도 없지요, 안중은커녕 눈 밖에 난지 오래, 오히려
제 어미를 호시탐탐 노리는 원수로 여깁니다.
제 어미와 다정한 시간이라도 보낼라 치면 “엄마 내 꺼야!”라고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이미 우리 부부의 잠자리는 파탄 난 지 오래이고,
두 손이라도 마주 잡고 침대에 누워 본지 어언 몇 몇 해인지,
심지어는 다정한 눈길에도 질투를 느끼느라
제가 두 모자에게 다가가면 매몰차게
“가!” 외마디 소리로 제 심장에 대못을 박습니다.
긴 말 필요 없이 한마디로 “가!”

그러니 저는 아빠로서보다는 놀러 갈 때 운전수,
이마트에서 맛난 거 살 때 결재하는 사람,
끼니마다 모자를 위해 식탁을 준비하고 설거지 하는 파출부
정도로 용도 변경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던 아들 녀석이 변했습니다.
요즘은 아빠 없인 못사는 녀석이 되었습니다.
이 날을 기다린 지 얼마인지, 감동, 감격,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부자 만세! 만시지탄일지언정 격세지감이요,
와신상담이었기에 권토중래라(뭔 소린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라고 물으시겠죠.
그간 경멸해 오던 물신주의를 저는 이 순간부터
숭배하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희에겐 정말 그림의 떡인 것들이 있었습니다.
정말로 요령부득인 것들…
아무리 애 쓰고 노력해도 구할 수 없고 가질 수 없는 그런 것들…
UFO처럼 있다고도 하는데 실체를 보지 못했고,
없다고 하기엔 간간히 그 한 귀퉁이가 슬쩍 보이는 그런 것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저 것’입니다.
위 그림에 있는 저 것을 ‘저 것’이라고 칭하는 이유는
‘저 것’을 우리 말로 옮길 적절한 단어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유인 즉, 우리나라엔 그것이 없었기에 그것을 부르는 단어조차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개인적인 추억이지만, 어릴 적 ‘저 것’을 저는 오로지
미국 영화에서만 보았을 뿐입니다.
도대체 이름을 알 수 없는 저 것은 영화 속 어느 부유한 가정에서
핸섬하고 자상하고 경제적 능력도 갖춘 아버지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그 아버지에 걸맞게 역시나 프리티하고 얌전하며 지적 능력도 갖춘
아이들에게 선물로 전해준 바로 그 것이었습니다.
둥그런 구안에는 때론 뉴욕 맨하탄이 있는가 하면
루돌프가 이끄는 썰매를 타고 날아가는 산타 할아버지도 있었고
선물을 주고 받는 가정만큼이나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를 휙- 180도 돌렸다 제 위치로 가져가면
오~ 세상에! 그 작은 공 안의 세상엔 온통 화이트 크리스마스!
그것은 한마디로- 영어를 모를 때부터 봐왔지만 나중에 영어를
배웠을 때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고르라 했다면 단연코 바로 이 단어-
“환-타-스-틱!”
이었지요.

그건 정말 그 자체로써 하나의 완결된 세상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꿈과 희망, 사랑과 기쁨-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들이
흩날리는 눈가루처럼 휘날리고 있었지요.
하지만, ‘저 것’은 오로지 스크린 속에만 존재할 뿐-
별로 핸섬하지 못하고 그다지 자상하지 못하고 당시의 누구나처럼
큰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제 아버지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와도 역시나 별로 프리티하지 못하고
그닥 얌전하지 못하고 영 지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제게
저 걸 선물해 줄 리 만무였습니다.
설사, 우리 아버지가 핸섬~ 경제적 능력을 갖추었다 해도
대한민국 땅에서 제대로 된 저 것을 구할 길이 별로 없었을 테니까요.

어린 날 대한민국의 어느 평범한 가정의 아들인 제게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얘기일 뿐, 때론 저 사물 역시나
영화가 만들어낸 픽션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지요.
그건 마치 ET나 마찬가지였던 셈입니다.
딱지나 접고 구슬치기나 하던 코흘리개였던 제가
그 물건을 손에 들고 뒤집어 보는 건
영화 속에나 존재하는 ET를 만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었던 것이지요.
아니, 오히려 ET가 있기라도 하면 그가 한국을 방문해 하필이면
우리 집 창문을 두드릴 확률이 보다 더 컸을 겁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저 것’들을 실물로 접해 보긴 했지요.
그러나 대부분 조악한 만듬새로 인해 어린 날 제게 던져졌던
환상적인 광휘를 더 이상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 차라리 ‘저 것’은 언제까지나 영화 속에 유폐된 픽션으로만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었는데…



출장 차 들렀던 영국의 해롯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선물 코너-
진열대 앞에서 전 10살의 어린이로 돌아가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영화 속에만 존재하던, 실존을 의심케 하던 픽션일 뿐인 바로 그
환-타-스-틱한 ‘저 것’을 두 눈으로, 두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좀 창피한 얘깁니다만, 얼마나 감격했던지…
30여년 가까이 어릴 적부터 꿈꿔오던 다른 세상, 하나의 완벽한 세상-
둥그런 구로 둘러 싸여 더욱 그 완결성이 도드라진,
마치 전설에만 존재한다는 여의주가 저런 건 아니었을까 상상해 오던,
그래서 무슨 소원이든 이루어질 것만 같았던 가장 완벽한 세상,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던, 미국의 부유한 가정에서나 선물로 주고 받던
별천지가 눈앞에서 눈발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아!!!!!

한 중국인 할머니가 마침 옆으로 다가와 이게 뭐냐고?
저를 점원으로 착각했는지 묻길래 상세히 설명드렸죠.
이건 “환-타-스-틱!“이라고.

아들 녀석에게 줄 선물이기에 앞서,
어린 날의 제 추억에 선사하기 위해 저 것을 집어 들었습니다.
계산하는 동안에도, 별천지 세상을 내 그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눈길로 어루만지며, 한편으로 가격표를 아쉬운 눈길로 읽던
중국인 할머니 역시 손자에게 선물할 결심을 세우더군요.



생후 최초로 가장 오랜 시간을 떨어졌던 아들 녀석은
아마 괴롭히고 투쟁할 대상이 없어졌기에 심심했던 걸까요?
사디스트와 매저키스트는 상대가 사라진 순간부터
역할을 바꾼다고 하지요.
괴롭힐 대상이 없어 괴로워지고,
괴롭힘을 주는 대상이 없어 괴로워지는…
그래서 순간 사디스트는 매저키스트가 되고
매저키스트는 사디스트가 되는 운명의 뒤틀림…
아마 그랬던 걸까요?
집에 돌아 온 순간부터 녀석은 교태와 아양을 떨기 시작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한쪽 눈으로는 묵직한 가방을 좇으며
개봉박두할 선물에 군침을 흘리면서 저의를 드러냈지만…

제게도 환-타-스-틱!했던 저것은 기대대로
아들 녀석에게도 환-타-스-틱!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이지 않는 녀석을 찾아 가노라면
거실 한 구석에서 혼자 연신 저 것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혼자서 공안의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듯 고개를 처박고는
스노우맨을 만나고 눈길을 달리고 크리스마스를 즐기곤 합니다.
공 안의 스노우맨과 함께 서 있는 사람을 "아빠"라고 부릅니다.
바로 저 입니다

자고 일어 났더니 유명해졌더라는 어느 시인처럼,
자고 일어 났더니 사랑받는 아빠가 된 저는,
"가!"라는 외마디 소리에 진저리치던 지난 날을 복수하듯
외마디 소리를 질렀습니다
"올랄라~"
(표기상의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말의 습관과 전공과목의
지겨운 가르침 사이에서 잠깐 망설입니다.
이다도시 아줌마로 인해 유명해진 올랄라는 사실 올랄라가 아닙니다.
오~랄라지요. 하지만, 우리말의 특성상, 그리고
칭찬과 감동과 찬탄과 감탄에 인색한 우리네 민족성의 특성상,
예컨대 훈민정음 어디에도, 그리고 월인천강지곡 어디에도,
하물며 홍길동전이나, 호질 어디에도, 심지어는 독립선언문 어디에도
오~! 라는 감탄사가 없기에,
불어의 독특한 표현인 오~랄라!를 옮기기엔
우리말 구조상 모음 'ㅗ'와 뒤따르는 'ㄹ'간에 일어나는
자연스런 유음화를 거역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의 가르침을 거역하고 오~랄라!가 아닌
올랄라라고 표기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올랄라~ )




그 뒤로---
녀석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마치 저 것이 180도 회전을 하고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듯...
그렇게 매몰차던 녀석이 이젠 엄마보다 아빠를 찾습니다.
그 이유가 선물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지만,
환-타-스-틱! 떄문이라고 고쳐 생각하면
이 아빠와 똑 같은 생각, 똑 같은 환상을 본 것이고,
그런 동지의식이 아빠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한 것이니
어찌 흐뭇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물신주의를 신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릴 적 저 것에서 봤던 꿈을
우리 아들 녀석도 보고 있습니다.

꿈 같은 일입니다.


(아직도 저 것을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 것의 밑바닥을 보니
영어로 Glitter Globe라고 써 있더군요.
글쎄, 우리말로 반짝공라고 불러야 하나 한문으로 찬구燦球라고 해야 하나?
억지로 어색한 말을 붙이기 보다는 그냥 저는 저것을 ‘저 것’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 것은 그냥 꿈이니까요)


오종흥 03-10-23 23:28
 
  와 환타스틱하게 숨차다.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작대기 03-10-24 04:51
 
  저도 그거 좋아하는데... 말씀대로 주변에서 볼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만듬새가 조악해서리...
이번 구리스마스때 어린이 선물용으로... 아니당. 어른 선물용으로 공구나 한판 해볼까요?
ㅋㅋㅋ
허브 03-10-24 09:35
 
  정말 아련한 추억이 있는 물건입니다.
저 역시 유럽 배낭여행때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른것이
그 유년시절 그리 갖고싶었던 것을 사오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결국 아이들의 선물이 아니고 저의 기념품이 되어버린 경험이 있습니다.
달노래님의  [저것]은 진정 아름답습니다.
그리버 03-10-24 10:46
 
 
공구 찬성 - 2개 아니 3개  (딸아이 2 마눌님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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