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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07-12 11:51
글쓴이 :
김화식
조회 :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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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자 조선일보 외부 사설에서 퍼온 글입니다. 요즘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 한번 읽어 보시는게 어떠한가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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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난 뒤 어느 시점에서부터인지 모르게 우리 국민들은 자부심과 긍지에 가슴이 벅차기 시작했다. 대한민국과 일체감을 느끼고 낯모르는 사람들과도 진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일체감과 동질감으로 못해낼 일이 없을 것처럼 느낀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지금 국민들 사이에서 출렁거리고 있다
- 중략 -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미국 하버드대학의 가드너 교수는 절정기 사회(絶頂期 社會·peak society)라고 불렀다. 국가나 사회의 공익(公益)과 대의명분을 위해 개인들이 헌신과 희생의 각오를 크게 하고, 손해를 감수하려는 분위기가 충만한 사회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 역사상 절정기 사회가 출현한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 강대국의 탄생이나 문화부흥의 시기 직전에는 절정기 사회의 징표가 나타나곤 했다는 것이다.
15세기 초엽의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이 그 대표적 예이고, 20세기 초반의 유럽 중부도시, 그리고 20세기 중반의 뉴욕이 바로 그 예이다. 1960년대 올림픽을 치르고 난 직후의 일본 사회 분위기 역시 그런 절정기 사회의 특징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1919년 3·1운동 직후에 이런 절정기 사회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이 운동으로 한껏 고조된 민족 일체감과 동질감은 독립운동에 대한 자금 지원의 증가와 젊은이들의 만주 독립군 참여 욕구의 증가로 나타났을 것이다. 새마을운동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초창기에 이런 절정기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월드컵은 절정기 사회의 명백한 조짐을 보인다. 이 기간 중에는 차(車)의 사소한 접촉사고 정도는 거의 웃는 낯으로 해결되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월드컵 덕분에 국민간에 일체감과 동질감이 커짐으로써 사회 전반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의 이익을 희생해도 좋다는 분위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절정기 사회의 조짐이 촛불처럼 시작되고 있다. 이를 정성스럽게 키워 한국이라는 용광로를 달구는 뜨거운 불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국민 전체의 이익과 대의명분을 위해 작은 손해를 먼저 감수하려는 자세로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원(舊怨)을 가진 개인들은 서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화해하는 것이다. 노사간에 얽힌 문제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양보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서로 적대적인 사회·정치 단체들도 서로 양보해서 함께 살고, 그래서 나라와 국민도 함께 사는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하략)
(文龍鱗/서울대 교수·교육학·전 교육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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