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짓기 시작하는 날을 특별하게 잡아서 하느냐?'
똥이네 집 설계를 마치고
집의 내외장제와 창틀, 바닥제와 보일러, 전기설비, 싱크와 붙박이장,
화장실 도기와 등, 문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견적에 합의한 후, 집짓기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시공사 사장님이 한 질문이었습니다.
건설회사를 다니다 독립하여 몇 십 년의 짠밥(^^;;)으로 집짓기를 하다보니
그런 분들이 계셨답니다.
착공일, 기공일은 물론이고, 주 기둥 세우고, 지붕 얹고,
심지어 장롱 들이는 날까지 어딘가에서 날을 받아 오셨답니다.
집이 미처 다 지어지지 않았는데,
입주 일을 맞춘다고
공사하다 만 집에 스티로폴 깔고, 하루 자고 나오기까지 했답니다.
우리더러 그 정도는 아니어도
어머니 계시니 혹 그런 날짜를 꼽아서 하느냐고 물은 것이었습니다.
물론, 팔순의 우리 어머니도 그런 이야기를 곧잘 하십니다.
올해는 서남쪽으로 오구삼살방(???)이 들어
그쪽으로 이사가면 가족 중 누군가 불구되지 않으면 죽는다,
지금 저 애가 저렇게 안 풀리는 이유는
삼재가 끼어서 그러니, 내년은 되어야 풀릴거다...
듣고 지나치기 섬짓한 이야기가 포함되면
사실 나쁘다는 쪽으로 선택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똥이네 부부는 우리 가족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어머니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 형편 되는 날이 좋은 날이다 생각했고,
삶에 오만해선 안되겠지만
누군가 하라는 대로 한다고 잘 될 것이라 믿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초하룻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맑은 물 떠놓으시는 것도 나름대로 삶의 지혜로 받아들입니다.
인간이 함께 하는 생물, 미생물, 자연의 벗들과 더불어,
알 수 없는 숱한 생명과 세상의 신비에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범하는 잘못과 실수에 대하여 사과하고,
함께 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다지는,
자신의 삶과 세상을 다독이는 한 방법이라고 이해합니다.
똥이네 집짓기 고사는 그런 의미로 '간단히 하자'로 출발하였습니다.
우리 땅에 우리가 집짓기를 시작한다지만,
그곳에 우리보다 먼저 터잡고 살았던 여러 생물들에게
이제 함께 살거라고, 잘 봐 달라고(^.-;;),
마을 분들께는 이제 똥이네도 이곳에 집 지어 이 마을 사람이 될 거니,
집 짓는 동안 흙먼지 날리며 시끄럽더라도
좀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사 하는
아부성 짙지만, 그래도 시끌벅적하지 않고 간단한 신고식으로 생각했습니다.
실제 시루떡과 돼지머리, 막걸리와 김치, 눌른 돼지고기가 전부였던
간단한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준비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여러 가지를 신경 쓰고,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똥이고모님이 김치 담궈 주시고,
마을 방앗간에서 햅쌀로 떡 만들어 달라고 특별 부탁하고,
특별한 맛을 자랑하는 막걸리에
마을에서 쓰는 상까지 빌려다 준비했습니다.
돼지머리는 생각 안 했었는데, 결국 하게 '되었고,
돈은 놓지 말자고 똥이 아빠와 합의했었는데,
'돼지머리에 돈을 꼽아야 부자(;^^;)된다'는 어머니의 강권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이런 선택들이 너무나 순간적인 것들이어서
'확신에 찬 결심을 미리 하지 않는다면
상황에 쉬 휩쓸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학습 효과입니다.
설계해주신 건축가 선생님, 시공사 사장님과 현장 소장,
전기, 목수 등의 작업 대장(오야지)들과
똥이네 식구가 함께 했습니다.
식구마다 돌아가며 막걸리 부어놓고 절하고,
따른 술은 땅의 구석구석에 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맞는 방법인지는 알지 못합니다.(m-.-m)
마을 분들께도 떡과 막걸리를 간단하게 내었습니다.
할머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거리낌없이 와서
무슨 일이냐 물으시고, 떡 드시고 덕담까지 해 주시는데,
남자 분들은 괜히 주변을 지나가면서
스스럼없이 들어오지는 않으십니다.
"와서 떡 드세요, 막걸리 한잔하고 가세요."
합창으로 모셔야만
오기 싫은데 힘든 걸음 한다는 표정으로 오십니다.
어쨌든 똥이네 집짓기 시작을 알리는 고사는 잘 치뤘고,
'동네 산신령이 고사떡 처음 먹는다며 감동하셔
똥이네 원하는 대로 잘 풀릴거'라는
푸짐한 덕담까지 들었습니다.
돼지머리에 꼽았던 돈과 머릿고기, 남은 떡과 술은 모아서
마을 이장님께
노인정의 어른들과 나눠드시도록 부탁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오해가 벌어졌습니다.
전기기술자 오야지가 돼지머리에 꼽힌 돈을 주섬주섬 챙기며,
그 돈은 작업하시는 분들이 술 한잔하는 비용으로
가져가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똥이네는 그런 것이 법도라는 말에
긴가민가 하면서 당황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상식이 없으니
그런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냐'며 좀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시공사 사장님이 얼른 나서
시골이니 동네 어른들 막걸리나 돌리라고 수습하여
그리 방향이 정하여졌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착공식 고사 때 돼지머리에 물려주는 돈은
현장 노동자 분들이 가져가시는 것이 관례랍니다.
주인에게 돌아갈거라 큰 돈 내놓았던
똥이아빠 친구가 당황해 하셨던 것을 생각하며,
이런 관습도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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